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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GONGJU CITY

2023.05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이복

  • 5월의 역사인물 이복(李福, 생몰년 미상)은 고려시대 공주의 향리로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옥룡동 비선거리 마을*에 살았다고 합니다. 공주의 대표적인 효자이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등에서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재 충남역사박물관 주차장 오른쪽 아랫마을
  • 이복은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집 일을 해주며 어머니를 봉양했다고 합니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께 드릴 밥과 국을 얻어 오다가 그만 빙판에 엎은 이복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서럽게 통곡을 했는데, 그 자리가 ‘갱경(羹傾)골’ 이라고도 불리는 지금의 국고개라고 합니다.
  • 이복의 어머니가 병에 들었을 때 러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는데, 한 의원에게 잉어의 피를 약으로 쓰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복은 얼어붙은 금강으로 가서 얼음을 깨고 낚싯대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해가 저물도록 잉어가 잡히지 않자 다급해진 이복은 천지신명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기적처럼 큰 잉어 한 마리를 잡아 어머니께 올렸습니다. 잉어의 피를 마신 어머니는 건강을 회복하고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 이와 같은 이복의 효행이 알려지자 나라에서는 효자비를 세워 표창하였고 이복은 지역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효자이복지리(孝子李福之里)’라고 쓰인 비석이 남아 있는데, 이는 ‘효자 이복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 공주의 중요한 효행 상징물이었던 이복의 효자비는 시간이 흘러 점차 방치되었다가 1647년(인조 25) 죽당 신유(竹堂 申濡)가 공주 현감으로 와서 새로이 단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비된 정려는 모습을 잃고, 기둥처럼 생긴 기다란 돌에 ‘효자이복지리(孝子李福之里)’라고 쓴 비석만 남게 되었습니다.
  • 이러한 사실을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기금을 모아 1978년 공주시 옥룡동에 ‘신 행적비’를 건립하였고, 1979년 비각을 새로 지어 ‘효자이복지리’ 비석과 ‘신 행적비’를 나란히 세웠습니다.
  • 공주시는 고려시대 공주의 대표적 효자인 이복의 삶을 기리고자 2023년 5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카드뉴스

2023 4월 가휴 조익1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3 4월 가휴 조익2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3 4월 가휴 조익3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3 4월 가휴 조익4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3 4월 가휴 조익5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3 4월 가휴 조익6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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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2023 4월의 공주 역사인물 포스터 이미지로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해주세요
2023 5월의 공주 역사인물 공주시 로고
  • 하늘이 낸 고려시대 공주의 효자
  • 고려시대 공주 출신의 효자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집 일을 하며 품삯을 받거나 음식을 얻어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있다.
  • 어느 겨울날 어머니께 드릴 국을 얻어 귀가하던 중 서두르다 넘어져 국을 엎지르고 통곡하였는데, 지금의 옥룡동 부근에 '국고개갱경羹敬골'가 바로 그 자리라고 한다.
  • 또 다른 효행으로는 병석에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겨울에 얼어붙은 금강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어머니의 병을 치유하였다고 한다.
  • 이러한 효행이 알려지자 나라에서는 효자 이복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의 '효자이복지리孝子李福之里'라는 비석을 세워 표창하였고, 이복은 지역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 1978년 마을 사람들이 옥룡동에 행적비를 새로 건립하였고, 1979년에는 비각을 지어 '효자이복지리' 비석과 나란히 세웠으며, 현재 공주 국고개 효심공원에 남아아있다.